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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홍

고뿔

 

 

색채가 점점 차갑게 변해가며 추워지는 날씨 만큼이나, 늦어지는 해의 출몰이 피부에 와닿는 기온을 쌀쌀하게 만들었다. 세상의 빛이라곤 사람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불빛만이 유일한 이른 새벽, 평소와 다름 없이 다른이들보다 일상을 일찍 시작하는 사람이 있었다. 짙은 밤 하늘에 홀로 떠 있는 달마냥 새하얗다 못해 서늘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 사람은 누구 하나 시킨것도 아닌데 침상에서 일어나 정갈하게 씻은뒤 여러겹이나 되는 옷들을 아무불만 없이 능숙하게 잘만 입었다. 신홍은 그 모습을 침상에서 제법거리가 있지만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이부자리에 누워 한가롭게 쳐다보고 있다 그가 옷을 다 입어 갈때쯤 어기적 일어나 마무리를 도왔다.

 

 

" 늘 생각하는 거지만, 이렇게 사는 거 피곤하다 생각하지 않는가 자네 "

 

 

이리 생활 한다고 해도, 무언가 달라지는 것도 없는 내일이거늘 매일이 똑같은 생활 속에서도 자신이 해왔던 것들을 묵묵히 아무런 불만없이 수행하는 즈한을 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내일 모레가 자신과 같은 마흔줄이거늘 게으름 피우고 늘어질때도 되었다고 생각을 하건만 마치 감정이 아예 없는 사람마냥 피곤함이나 게으름따위 느끼지 못하는 듯 늘 한결같은 그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예, 괜찮습니다. "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만, 역시나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듯한 즈한의 대답이 귀에 들려와 이번엔 속이 아닌 겉으로 대놓고 한 숨을 내쉬었다. 물론 체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의 자신이였기에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기란 조금 고되었지만 제멋대로 들어와 얹혀사는 주제에 불만을 토로하기엔 상대가 그런 감정적인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였다. 나쁜점이 있으면 좋은점이 있으라, 세상 어디 좋기만 한 것이 있겠는가 라고 생각을 하며 즈한이 주는 이익이 훨씬 컸기에 불만을 곱게 접어 한숨과 함께 날려 버렸다. 어느새 옷무새를 단정히 하고 말끔하게 차려 입은 즈한의 모습을 팔짱을 낀채로 위 아래로 훑어 보다가

평소와 다른 위화감이 느껴져 고개를 비딱하게 들고선 머리를 굴렸다.

 

 

" 즈한, 잠시 "

 

 

평소에도 반응이 느린 그였기에, 그의 한쪽 팔목을 잡아 행동을 저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였다. 살짝 낮은 시선에 위치하여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도 익숙한 일이였다.  그런 모습을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바라보다가 무언가 생각난듯 그에게 다시 한 번 말을 걸었다.

 

 

" 즈한, 아무말이든 좋으니 말을 해보...아니지, 자네가 이런 말을 듣는다고 해서 무언가 스스로 생각해서 말하기엔 어려울터이니 어제 있었던 업무적 일과를 가볍게 이야기 해보게나 "

 

 

확실히 예전보다는 사람 같은 표정을 지을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표정한듯 하면서도 다소 음울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서 정말로 다른 추임새나 사적인 이야기는 일절없이 업무적 일과만을 무미건조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리고선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감을 잡았다는 듯 자신의 턱을 두드리고 있던 한쪽 손을 다짜고짜 그의 앞머리를 들춰내고선 맨 이마에 갖다 대었다. 자신의 피부색과는 대조되는 하얀 피부 위, 평소 머리카락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자상이 가득한 한쪽의 얼굴과 여지껏 보아왔던 멀쩡한쪽의 얼굴이 한 번에 시야에 담겼다. 그런 흉마져도 그에게 어울리고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리지 않아도 좋다고 늘상 생각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잡념에 집중할 때가 아니였다. 손바닥에 닿는 그의 이마의 열기가 즈한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 아이고... 이를 우얄꼬, 자네가 나 때문에 고뿔이 옮은듯 허이 "

 

 

평소에도 창백하고 하얀 얼굴이라 안색으로는 몸의 상태를 살피기 어려운 그였고 심지어 여러겹 껴입는 일상의 옷을 때문에 피부의 체온을 재기도 쉽지가 않았다. 평소보다 좀 더 멍한듯 조금 느려진듯해 보이는 말의 빠르기와 높낮이, 목울림의 상태가 이상하다 싶었기에 위화감이 들었던 것이였다. 그도 그럴것이 한 두번 들은 목소리도 아니였거니와 이리 조용한 새벽, 매번 듣던 그의 목소리였기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누구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오늘은 그냥 침상에서 쉬는것이 어떠한가 자네 "

 

"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

 

" 어허... "

 

 

장난이 과하면 화를 불러온다 하였던가, 어진에게 화살을 두 어대 맞은일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좀이 쑤신 탓에 제아에게 가 평소대로 장난을 치다 그의 냉기에 그만 고뿔이 걸리고 말았었다. 평소라면 괜찮았었겠지만, 맞은 화살로 인하여 몸의 회복력과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대로 직빵으로 걸리고 말았던 것이였다. 화살을 맞은 시점부터 장난처럼 드나드는 즈한의 처소가 아닌 평화구역내 있는 주막들을 전전하며 어느정도 몸을 회복하고 다시 오긴 하였지만 고뿔이 다 나은 상태는 아니였다. 물론 지정 받은 거주지가 있기야 하였지만 그 상태로 짐짝마냥 쳐박혀 있는단들 일을 시키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것이 분명하였기에 나름 재밌는 도망자의 삶을 느끼다 어느덧 기간이 한달이 훌쩍 지나가 있어 부랴부랴 즈한의 처소로 돌아왔던 것이였다. 못 봤던 기간 만큼의 늙은 어리광(?)을 부린닾시고 그에게 이것저것 시키며 식을 같이 하고 그간 돌봐주지 못했던 몸의 흉터들을 보살펴주려 신체접촉을 하였던 것이 화끈이였던 것 같았다. 졸지에 병균체가 되어져 버린 머슥함에 뒷머리를 긁적이다 그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 미안해서 그러하지, 정말로 쉬지 않아도 괜찮겠는가 "

 

" 네, 괜찮습니다. 어차피 업무도 그리 과하지 않다 생각합니다 "

 

 

보통의 사람이였다면 충분히 요령 피우며 늘어져 있을법한 열인데도 으례 그렇게 사는 것이 좋은것인지, 아니면 그것밖엔 길이없어 자신의 생활에 조금도 일탈을 주지 않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느낌이였지만 그런 그를 꺾기엔 어려워 보였다. 난감함에 다시 턱을 한 손으로 두드리면서 잠시 사념에 잠겼다가 작은 한숨으로 생각의 마무리를 지었다.

 

 

" 알겠네, 자네의 뜻이 그러하다면 내 일찍 돌아오도록 하겠네 "

 

" 조급하실 필요없이, 천천히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하시고 오셔도 된다 봅니다 "

 

" 에휴.. 알겠네, 알겠네 "

 

 

어차피, 본인이 미안해서 그러한단들, 그래서 걱정이 든단들 즈한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만한 감정의 기반이 마련된 사람이 아니란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었기에 소 귀에 경읽기랴, 그저 자신이 빠르게 행동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마음 먹었다. 할 일이라고 해봤자 일 없는 부서이기에 그닥 큰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바람을 다루는 술사다 보니 빠르게 자신이 원하는 만큼 이동 할 수가 있었다. 주로 마을 안을 돌아다니며 놀기에 최적의 능력이긴 허나 평소엔 별 일이 없는 전하이시지만 언제 마음이 바뀌어 자신을 단두대의 이슬로 목과 몸을 분리 시킬지 알 수는 없는 것이기에 짤리지 않을 정도로만 구역 외곽으로 발자취를 넓혀가며 있지도 않을 사람의 흔적을 찾았었다. 금일에는 한달 전 부터 신경쓰이던 곳이 있었기에 그 곳에 가보려 하였으나 다음으로 미루며 머릿속에 해야할 것들의 우선 순번을 다시 정리하였다.

 

 

" 그럼 먼저 가서 일 보게나, 나도 나갈 채비를 하고 다녀오겠네 "

 

" 알겠습니다 "

 

" 무리하지는 말게나 "

 

" 네 "

 

 

애초에 무리라는 단어의 뜻을 감정적으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타인이 하는 통상의 대화는 알아 듣는 것 같은 그였기에 무리하지 말란 말을 꺼내었다. 촛불이 존재하던 방에선 그래도 하얗게 빛이 나고 있던 그 모습이 집무실을 뒤로 한채로 어둠으로 사라지자 자신또한 발걸음을 재촉하여 자리를 옮겼다. 어느 의원이 가장 탕을 잘 짓는다 하였는가, 주막에서 들었던 시덥지 않은 이야기들을 머리속에서 되짚어 가면서 행동을 바삐 했다.

 

 


 

 

 

 

 

 

 

 

어느덧, 세상을 밝게 비출 해가 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도 쌀쌀할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구름에 가려진 햇살 때문에 마치 비오는 날과 같이 어둡고 습한 오전이 되었다. 안 그래도 살림살이가 별로 없어 적막해 보이는 집무실은, 날씨탓에 햇살마져 비추질 않아 잿빛가득한 공간이 되었다. 그래도 없는것 보다는 나은지 제법 기온이 올라 새벽보다는 따뜻한게 사실이였다. 날씨탓일까, 새들 마져도 지저귀질 않는 탓에 고요한 적막만이 흘러갔다. 즈한의 손놀림에 따라 한지 위에 쓸리고 있는 붓의 소리마져도 조용했기 때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아무도 없는 곳이라 착각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오히려 그런 무채색의, 적막한 공간이 되었기 때문일까 누군가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면 되려 색이 찬란한 곳에 있는것 보다도 그의 모습이 위화감이 없이 배경에 녹아들듯 자연스럽게 있는 듯한 생각이 들 정도였을 것이다.

 

 

온 몸에 가득한 흉터며, 감정의 거의 없는 듯한 그의 모습은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여타 다른 사람들의 모습과 달랐다. 자기애가 없는 무형 그대로의 모습, 누군가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너무 자신에게 가혹한 것이 아니냐며 묻는다 한들 거기에 대답할 수도 없거니와 그것에 대답해야할 이유를 못 느끼는 그였기에 몸의 상태가 좋지 않아 무리를 하지 않는다던가, 아니면 요령을 피운다던가, 느긋함을 즐기며 회복을 한다던가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 수 밖에 없는 것이였다.

 

 

비록 예전과 달리 일이 많이 줄었다고는 허나, 자신이 해야할 일을 다 마치고 나서야 붓을 떼고는, 평소와 같이 마치 도구처럼 익숙해진 습관에 따라 일어나려고 했다. 차를 우리기 위해서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 갑작스레 밀려오는 현기증에 잠시 몸을 휘청였다.  그도 그럴것이, 다른 보통 사람이였다면 이미 고열로 인해 앓고도 남았을 정도의 열이였기 때문에, 이토록 자신의 몸에 관심이 없는 그가 아니였다면 이불을 둘러싸매고 앓아 누웠을 지경이였을 것이다.

 

 

열로 인해 더욱 멍해지는 머리와 시야의 촛점이 잘 안 맞는거 같은 상태를 뒤로 하고 자신이 으례 해야할 것을 하기 위해서 다시 몸을 추스려 일어나 걸음을 뗀 순간 아까보다 더 크게 수습하기 힘들정도의 현기증이 몰려왔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일줄 몰랐던 그였기에, 그런 상태에선 일어나면 위험하다는 것도 알리가 없었다. 휘청임에 그만 무게 중심을 잃고 맥 없이 쓰러지려던 찰나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누군가 그의 등을 받쳐 주었다. 그 덕분에 즈한이 오전 내내 작성한 문서들이 마치 봄날에 흩날리는 꽃잎 처럼 흩날려 집무실의 사방팔방으로 날아가 흩어져 버렸지만, 그 어떤 문서도 사람보다 중할 순 없는 것이였다.

 

 

" 아이고, 무리치 말라고 했거늘, 좀만 더 지체 했어도 일 날뻔했네 그려. 그러다 머리라도 중허게 다치면 어쩔라고 그러는가 자네 "

 

 

외출을 할때면 항상 챙겨쓰는 검은 가면을 하고는, 즈한을 한 팔로 안아 지탱하고선 평소에 잘 하지도 않던 잔소리를 늘어 놓았다. 한 손에는 하얀천으로 곱게 둘러싼 보따리를 쥐고선 그대로 그를 안고 있던 팔에 힘을 주어 즈한이 무게 중심을 다시 잡고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왔다.

 

 

" 아, 평소보다 일찍 오셨군요 "

 

 

자신이 작성한 문서가 추풍낙엽마냥 흩날리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원망도 들지 않는지 예의 알 수 없는 듯한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마중 인사를 하는 그의 모습에 더한 잔소리는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사람의 얼굴에 약하다는 것은 자신도 알고, 남도 잘 아는 사실이였기에. 언제나와 같이 만년초와 같은 어여쁜 모습을 하고 있는 그였지만, 확실한건 새벽 나절보다도 상태가 훨씬 중해졌다는 것은 평소보다 훨씬 멍한 얼굴로 알 수가 있었다.

 

 

" 가세 "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하얀 보따리는 그가 집무를 보는 책상위에 잠시 올려두고 두 말 할 거 없이 그대로 즈한을 양팔로 안아 올렸다. 평소 그가 집무를 마치거나 일을 마치고 아무데서나 잠이 들면 그대로 안아 침상으로 옮기던 것이 자주 있었기에 그를 안아 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였다. 비록 옷의 무게가 있고 골격이 커 무거운 편이라고는 하나 그 정도도 못 안아 올릴정도로 늙진 않았다. 한달 동안 또 아무데서나 잠이 들어겠거니란 생각이 잠시 들어 안쓰러움이 잠시 밀려왔으나, 그걸 굳이 티내어 내색하진 않은채 침실로 그를 데려갔다.

 

 

" 침상에 뉘어 주고 싶지만은, 그리되면 내가 살피기 어려울 거 같으니 오늘은 여서 자게나 "

 

 

원래 자고 일어난 이부자리는, 성인이라면 가지런히 정리를 하고 말아두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거늘 귀찮은 늙은이는 그냥 이불을 그대로 펴둔채로 나오기 일상이였다. 언제든 피곤해지면 와서 누워 잘 수 있도록 말이다. 덕분에 피고 자시고 할 노고도 없이 그대로 즈한을 눕히었다. 심지어 침상 옆에는 커다란 원형의 창문이 있어 아무리 잘 막았다고는 하나 풍이 들어 한기가 들 수도 있으니 차라리 이 편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평소 두툼하게 깔아둔 이불 덕분에 바닥이여도 그리 냉하고 딱딱하진 않으리라.

 

 

" ...이리 하지 않으셔도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

 

" 더는, 아무말 하지 말게나. "

 

 

워낙 험히 살아온 과거를 지닌 그였기에, 고뿔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이해는 한다만은, 그렇게 둘 순 없었다. 오후에 자신이 해야할 일들이 남아져 있단 것을 알기에 그것을 하러 일어나려고하는 즈한을 억지로 강하게 어깨를 눌러 잡아 행동을 저지 하였다.  그런 뒤 자는 것이 불편하지 않도록 최소한 위쪽의 두껍고 무거운 옷들만을 천천히 벗겨 내며 그의 고집을 꺾으러 반은 진심이 담긴 위헙반, 진담반의 농을 꺼내었다.

 

 

" 자네 이리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내, 제아를 더 골치아프고 피곤하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네.  자네로 인하여 제아가 곤란해지길 바라지 않는다면 오늘은 그냥 누워 쉬게. 아시겠나? "

 

 

못할것도 없었다. 일전에도 중요한 기록 문서중 딱, 한페이지만을 훔쳐 제아가 담당하고 있는 부서를 곤란하게 만든적도 있었다. 물론 정말로 제아의 뚜껑을 열리게 할 의도는 없었기에 반나절 뒤 돌려주긴 하였지만은 그 옛날, 제아를 곤란하게 만든단 이유로 자신을 결계속에 가두어 즈한 본인이 실신할때까지 풀어주지 않았던 그였기에 유일하게 쥐고 있는 약점이 그 밖에 없어 그리 말을 하였다. 역시나 누구에게나 눈높이가 맞는 대화 방식이 있다 하였던가, 이내 곧 얌전해진 즈한을 보고선 그대로 그를 눕혔다.

 

 

" 옳지, 착하네 "

 

 

가면을 아직 쓰고 있는 상태라 표정이 보이진 않겠지만, 평소처럼 웃으며 말을 잘 듣는 그를 칭찬하였다. 그리고선 베개에 즈한의 머리를 제대로 뉘이고 자신이 덮던 이불을 그의 상반신까지 끌어 올려 잘 덮어주었다. 물론 잠옷으로 다 갈아 입힌것도 아니고 평소 생활하던 옷 중 두껍고 움직임을 불편하게 할 것들만 어느정도 벗겨낸 상태였기 때문에 즈한의 열로 인해 달구어진 옷들이 함께하여 써늘해진 이불이 많이 춥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좀 있다, 그의 열로 뎁혀진 이불안이 잘 뎁혀지고나면 탕약을 먹이고 나른해질쯤 제대로 잠옷으로 갈아 입혀주면 되리라.  그리하면 한기가 들지 않고 무난히 잘 보낼 수 있으리라 속으로 계산 하였다.

 

 

" 내, 탕약을 달여야 하니 여서 자고 있게나. 잠이 오면 그대로 잠이 들어도 괜찮네, 내 오면 깨울터이니. "

 

 

평소 자상을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불편하지 않도록 위로 쓸어 넘겨 올리면서 그를 다독였다. 물론, 그것이 불편한지도 모르고 살았을 즈한이였지만 있다 가져올 차가운 물수건을 생각하자면 미리 이리 해두는 것이 나았다. 어느덧 과해진 열 때문에 머리카락에 다소 땀이 젖어 이마에 늘어 붙어져 있는것도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쓸어 정돈해주곤 그대로 몸을 일으켜 침실 밖, 집무실로 나왔다.

 

 

집무실로 오니 자신이 거하게 어질러 놓은 문서들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것이 보여 귀찮음에 뒷머리를 긁적이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바삐 움직여 문서를 쓸어 모아 즈한의 집무 책상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선 다시 날아가지 않도록 주변의 책을 갖다 눌러둔 뒤, 하얀 보따리를 다시 손에 쥐고선 밖으로 나가 부엌으로 가기전 집을 한바퀴 돌아다녔다. 물론 침실에서 부엌으로 바로 가도 되는 것이였지만 약재가 집무실에 있을 뿐더러, 자신이 해놓은 과실(?)을 처리 해야했기 때문에 겸사 겸사 집무실로 향했던 것이였다. 집이 더 이상 냉해지지 않도록 가는 길목에 즈한이 환기 겸 늘상 열어두는 창문들도 모조리 닫고 문 단속을 하면서 누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문 또한 걸어 잠궜다. 어쨌든 그는 오늘 휴식이 필요하기에 누군가 와서 귀찮게 일을 맡기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들을 빠르게 마친 뒤, 부엌에 도달한 신홍은 그제서야 가면을 벗고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보다도 책임을 진다거나 귀찮은 일을 싫어하는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자처하여 타인의 병수발을 들고 있자니, 인생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였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평소에 신세를 지고 있는 방 주인이며 그것이 더욱이나 즈한이였기 때문에, 심지어 자신이 고뿔을 옮겼기 때문에 안 할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아무리 무책임함하면 자신이라고는 하지만 경우라는게 존재했다. 무엇인가 책임을 진다건가, 약속을 한다던가 하는 것은 언제나 귀찮고 번거로운 일들이였기에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서 잡일을 한 적은 있어도 타인을 위해서 한 적은 별로 없었다.

 

 

이래서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인가 낮게 중얼 거리면서 탕약을 다리기 위한 도구를 꺼내 부엌에 있는 촛대의 촛불로 불을 지폈다. 어두운 부엌에 불 하나가 더 늘자 제법 많이 어둡지 않은 상태가 되었고 하얀 보따리를 풀어 놓자 그 안엔 하얀 한지로 곱게 쌓여진 고뿔에 좋은 것들로 이루어져 포장된 약재와 함께 늦가을이 무르익음에 따라 이제는 점점 더 보기 힘들어진 발갛게 잘 익어 터지기 전의 먹음직스런 홍시들이 나왔다. 평화구역내 천민과 일반 사람들이 이루어져 살고 있는 구역에 형성된 시장을 돌아 다니며 사온 홍시였다. 모롬지기 감기 예방에는 좋다고 알려져 있으나 즈한은 이미 감기에 걸린 상태라 효과가 없을거 같으면서도 워낙 쓴 약재들이다 보니 입가심으로는 좋을 거 같아 잊지 않고 사온 것이였다.

 

 

 

가볍게 양손으로 홍시를 두 쪽으로 나눠 자신이 즈한의 거처에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가져오게된 은수저로 아무말 없이 홍시의 씨앗과 심지 부분을 걸러 낸 뒤 잘 익은 알만을 하얀 그릇에 옮겨 담았다.  홍시청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테지만, 이제와 누군가 담군걸 이 작은 시장에서 살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나중을 위해서 웃돈을 주고서라도 주막 주모나 다른이에게 주문을 해두여야겠다며 혼잣말로 투덜 거린뒤 두 어개의 홍시를 그렇게 잘 발라 그릇에 정갈히 담은 뒤, 큰 바가지를 부엌에서 찾아내 물을 가지러 갔다. 열을 식혀줄 차가운 물수건을 만들 수 있을 물과, 약재를 다릴 물들이 필요 했기에.

 

 

이런 저런 즈한을 보살필 준비를 하면서 한숨을 쉬고 혼자 투덜 거리긴 하였지만, 그것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안 어울리는 행동을 하는 듯해 보이고 귀찮음에 스스로가 웃겨 한 것들이지 이 상황이 불만 이냐면 그건 또 아니였다. 애초에 망가져도 단단히 망가져 공허해질 수 밖에 없던 즈한이였기에, 그의 옆에서 편히 쉴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였다. 이미 돌이키기엔 한참을 늦어버린 어긋나게 살아와버린 자신이였기에 타인이라면 감당하기 힘든 자유분방함과 무책임함이 보통의 사람이였다면 상처를 입히고도 남았을 것이였다.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여도 격렬하게 부딪히지 않는 사람, 그것이 즈한이였기에 그의 외모만이 마음에 든것만이 아니였다. 물론 사람으로써 그를 가여이 여기고, 안쓰럽게 보는 맘도 컸지만 가장 좋은것은 자신이 어떻게 된다 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을것만 같은 모습이 더욱 편안함을 느끼게 하였다. 그래도 최소한 자신또한 사람이라면 이럴때만이라도 그에게 신세진 것은 갚아야 한다 느꼈다.

 

 

 

" 어서 낫게나, 즈한 "

 

 

 

그리하여 그렇게 말하고, 속으로 빌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인을 위해 정성껏 약재를 달이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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