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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홍

불청객

 

 

 

" 오호, 못 생긴 서양 치안부장 안녕하신가! "

 

" .... 즈한 "

 

" 네 "

 

 

한 폭의 수묵화 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하면서도 단출하게 차려진 한 집무실에서 평화로운 오후 햇살이 비추는 것과는 달리 누가 봐도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지은 건장한 사내 한 명과 어여쁘지만 무표정한 지은 표정을 지은 사내 한 명, 그리고 시커먼 가면을 눌러 쓴 사내 한 명이 자리 잡고선 이상 기류를 풍기고 있었다.

 

 

" 저, 누가봐도 식충이가 분명한 인간 해충은 누가 방에 들여 놓은 겁니까 "

 

" 아니, 이보게 말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인간 해충이라니 "

 

" 해충이 아니라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 겁니까 "

 

" 여러모로 목석 같은 자네 보다는 내가 이 세상에 기여하고 있는게 더 많다고 생각한다만은 "

 

" 그런걸 보고 사고 라고 하고,  재앙의 원흉이라고 하는 겁니다 "

 

" 거 참, 생긴대로 논다고 하는 짓도 못 생긴 주제에 말이 참 많네. 자네는 "

 

 

가면을 쓴 사내는 마치 일방적인 자신의 친분을 과시하려는 듯, 집무실 의자에 이 상황이 전혀 당황스러우지 않은건지 아니면 이 상황에 대한 별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는 사내의 어깨에 한 팔을 두른 채로 혼자서만 복식이 다른 그를 올려다 보며 말을 이어 갔다.

 

 

" 방 주인이 허락 해줬는데, 뭐가 상관이란 말인가. 서양놈들이 알 수 없는 동양의 정~ 그런게 있단 말일세. 우리 동양의 착하고 예의 바른 즈한을 보고 좀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을 기르는게 어떠한가 "

 

" ... 즈한, 허락해준 겁니까? "

 

" -거절하진 않았었습니다 "

 

 

웃는 듯, 웃지 않은 듯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이 상황과는 관계 없다는 듯 조용히 있는 즈한의 얼굴과 거절하진 않았다는 말에 대충은 눈치를 깐 베드로는 말을 이어갔다.

 

 

" 허락을 해 준게 아니라 즈한이 거절하지 않으니 눌러 앉은거 아닙니까 "

 

" 에엑, 그게 그거지 않는가. 거절하지 않으면 허락인거지 뭘 그리 따지는게 많은겐가 자네는 "

 

" 그런걸 보고 예의를 밥 말아 먹었다고 하는 겁니다 "

 

" 난 자네의 얼굴이 더 예의를 말아 먹었다고 생각한다만은 "

 

" 대체 어느 누가, 상대 동의도 없이 이렇게 살림살이들을 마구잡이로 가져와 늘어 놓습니까 "

 

" 바로 나, 신홍이지 말일세 "

 

 

베드로는 즈한의 집무실 구석에 놓아져 있는, 누가 봐도 신홍이 덮고 잘만한 화려한 여분의 이불들과 옷가지들,  여러개의 곰팡대들이며 몇 몇개는 아직 풀어 지지않은 작은 보따리들이 뭉쳐진 더미들을 손으로 가르키며 쏘아 댔다.  정말로 즈한이 거절의 말을 하진 않았다고는 하나 뻔뻔스럽게도 온갖 살림살이를 가져와 집무실에다 펼쳐 놓는 것은 누가 봐도 몰염치한 짓이였다.

 

 

" 아 글쎄~ 자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래도, 더불어 사는 동양의 정 같은거 자네가 알리가 없지 않은가. "

 

" 정 같은게 아니라 즈한의 성격을 이용해서 늘러붙는 빈대 같은 짓거리 아닙니까 "

 

" 엑, 빈대라는 말을 하다니 즈한.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래서 기분이 나쁜가!  "

 

 

신홍은 가면 아래 숨겨져 있어 표정이 드러나진 않지만, 마치 상처 받았다는 듯이 너스레를 떨면서 여전히 즈한의 어깨에 올린 한 팔을 풀지 않은 채로 그를 바라다 보았다.  자신의 생각과 기분을 묻는 그의 말에 어떠한 대답이나 요동의 제스쳐 하나 없이 주변의 공기에 동화될 듯 조용하게 있는 즈한은 그저 웃는것인지 아닌것인지 알 수 없는 예의 미묘한 표정 그대로 인 채 잔잔하게 앉아 있을 뿐이였다.  되려 그런 즈한의 모습에 심기가 불편해진 베드로는 다짜고짜 잡기 좋게 늘어져 있는 신홍의 긴 머리를 확 잡아채고는 있는 힘껏 잡아 당겼다.

 

 

" 우, 우왁 서양 돼지가 사람 잡네! 아이고마 사람살려! "

 

" 뭐라는 겁니까, 즈한이 그런거에 대답 못한다는 걸 알고선 이용해 쳐먹는 당신이야 말로 돼지보다도 못한 해충입니다만 "

 

" 우매한 서양놈이 고귀한 동양지부에 발을 들여 놓는 것만으로도 경을 칠 일거늘! "

 

" 당신보다는 제 쪽이 훨씬 더 사람으로써의 구실을 하고 있으니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

 

 

여전히 꽥꽥 거리는 신홍의 머리카락을 있는 힘껏 잡아 당기면서 문 앞으로 가서 그를 내팽겨 쳤다.  차라리 까마귀가 울어대는 소리를 듣는편이 좋을거라고 생각하는 베드로였지만 굳이 그런 말은 하지 않은 채 그가 다시 방에 다시 들어오기 전에 미닫이 문을 쾅! 하고 닫아 버렸다.

 

 

" 고오얀 서양놈... 즈한, 있다 보게나! 이 못생긴게 가면 다시 옵세! "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다시 열어 제끼고는 얼굴을 불쑥 들이밀어 자신의 할 말만 한 채로 신홍은 재 빠르게 사라졌다.  문을 열자 마자 보이는 서양 돼지의 무지막지한 손이 보였기 때문에 이대로, 이 자세로 저 손에 맞았다가는 가면 뿐만이 아니라 두개골도 부서질 판이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후퇴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였다.  인간 해충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베드로는 미간을 살짝 접어 인상을 찌푸리고는 한숨을 쉬고선 즈한을 바라보았다.

 

 

" 저런 인간에게는 틈을 주면 안되는 겁니다. 확실하고 단호하게 거절하지 않으면 계속 들러 붙습니다. "

 

" 네 "

 

 

차를 우리려는 듯, 집무실 책상에서 멀어져 다른곳으로 걸어가는 즈한을 따라가며 말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 이건 누가봐도, 당신을 마치 식모처럼 부려 먹겠다는 못 배워 먹은 심보라고 생각합니다 "

 

" 네 "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다기 세트에 그의 발걸음이 멈추자 같이 발걸음은 멈췄지만 입은 멈추질 않았다.

 

 

" 세상은 저런 인간을 두고 빈대라고 부르며, 그런 인간은 멀리 하셔야 하는 겁니다 "

 

" 네 "

 

 

먹히지도 않을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베드로였지만, 그래도 무미건조하게 계속해서 네, 네 하며 대답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더더욱 잔소리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고 잔소리를 하는 베드로와, 그런 그의 소리를 마치 남의 이야기를 듣듯 열심히 경청은 하지만 전혀 느끼는 바가 없는, 무표정하지만 사뭇 어떻게 보면 온화해 보이는 얼굴로 묵묵하게 차를 우리는 즈한의 사이로 어느덧 높이가 낮아진 해가 깊게 그림자를 드리우게 만들었다.

 

 

 

 

.

.

.

 

 

 

 

 

 

 

 

" 쯔하안~ 그 못생긴 서양놈은 갔는가~ "

 

" - 네, 가셨습니다 "

 

 

한 시진쯤 지나어 예의 그 뻔뻔함으로 무장한 신홍이 열려져 있는 미닫이 문 틈으로 고개를 불쑥 내밀며 즈한의 집무실에 다시 들이 닥쳤다.  원치 않았던 불청객으로 인하여 기분이 어그러진 그였지만 어느덧 노을로 얼룩져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방 안에 홀로 마치 다른 세상의 사람인 마냥 외모를 빛내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짐을 느꼈다.  혈색이 옅은 하얀 피부와 색소가 옅은 그의 머리카락에도, 백색으로 하얗된 그의 옷에도 모든 곳에 붉으스름하고 어여쁜 노을이 물들어 마치 그 어느날 한가로이 풀내음을 맡으며 노을을 즐겼던 그 날에 보았던 순백색의 어여쁜 만년초와 그가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 쯧쯧,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이라곤 1도 시끄러운 서양 돼지 놈일세, 아니 그러한가 "

 

 

이렇다 저렇다 하는 대답 대신,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웃는 듯 마는듯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역시나 세상 아름다운 것은 정서 건강에 좋다는 것을 다시끔 생각하는 신홍이였다.  그도 그럴것이 자신이 내키지 않을때 귀찮은 것들을 시키는 것이 세상 가장 싫은 신홍이였기에 감정 순환이 느리고, 어찌보면 사람의 희노애락이 전혀 없는 듯 닳아져 있는 즈한의 그런점이 사물을 대하듯 아무런 감정 없이 자신을 대함이 느껴져 몹시나도 마음에 들 수 밖에 없었다.  사뭇 어쩔때는 그런 점이 애잔하고 짠하게 느껴지긴 하였지만, 그 옛날과 비교하여 많이 상태가 호전된듯 해보이는 즈한의 모습이였기에 쓸때없는 오지랖은 쉬이 하지 않으려 했었다.

 

 

" 일이 한가하면, 내 재밌는 것을 들고 왔으니 함께 즐겨보지 않겠는가 "

 

 

귀찮은 방해꾼이 사라지자 이제는 가면을 벗고, 능글맞은 얼굴을 드러내 놓고 서글하게 웃으며 신홍은 한 쪽 손에 든 보따리를 즈한의 집무실 책상에 펼쳐 놓았다.  백색의 고운 보따리 안에서는 체크무늬가 이루어진 나무 합판과 흰색의 다양한 형태로 되어져 있는 작은 물건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형태지만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무언가들이 책상 위로 즐비하게 늘여졌다.

 

 

" 서양 장기라고, 체스라는 걸세. 어떠한가? 알고 있는가? "

 

" -네, 알고 있습니다. 기록들로 이미 전에 접해보았습니다 "

 

" 역시, 모르는게 없는 우리 똑똑이구마! 어떤가, 괜찮으면 나와 한판 둬 보는게 어떠신가 "

 

" 네, 괜찮습니다 "

 

" 좋아, 좋아! 이러니 내가 자네를 좋아할 수 밖에 없다 생각한다네~ 그렇지만 그냥 하면 재미가 없으니... 내기를 하는게 어떠한가!  내가 이기면 즈한, 자네에게 맛있는 저녁을 식사를 사주고 자네가 이기면 져서 슬픔에 잠겨져 있는 나를 위로 할겸 같이 저녁을 먹어주는 걸세. 어떠한가? "

 

 

다른 사람이 들었더라면, 말도 안되는 내기라며 졌을때와 이겼을때의 내용이 말만 다를뿐 같은 내용이라는 것을 지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은 바로 아닌 즈한이였으니...  그런 뻔뻔한 이야기를 듣고도 아무런 기분도 상하지 않았는지 여전한 얼굴로 잔잔하게 눈을 내리깔며 네 라고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입꼬리를 씩 말아 올려 웃고는 하얀색 체스 장기말들은 즈한의 앞에다가 대충 정리를 하여 주고, 까만색의 체스 장기말들은 자신의 앞에다가 마찬가지로 대충 정리를 하였다.

 

 

" 즈한~ "

 

" 네 "

 

 

여전히 체스판과 체스말들을 정리하는 것에 눈을 고정한채로 즈한에게 말을 걸어, 그가 대답해주자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 내, 그대가 나의 뻔뻔한 요구를 거절하지 않았음에 고마워 하고 있다네.  자네가 신경쓰지 않는 옛날 일들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런 일들을 당하고도 살아와 이런 곳에까지와서 삶의 자락을 썩히고 있는 그대를 보자니, 내 있지도 않은 오지랖이 생기는 기분이라 심심하여 내 맘대로 하는 것이니, 허니 불편해짐 언제는 말하게나 "

 

 

딱히 그가 대답 해줄거 같지도 않거니와, 그에게 대답을 바라지도 않는 자신이였기에 마지막으로 남은 하얀색 킹의 말을 즈한의 손에 쥐어주고는, 자신의 까만색 킹의 말을 한 손으로 튕겼다가 재빠르게 잡으며 화제를 전환 시켰다.

 

 

" 그럼, 오늘 저녁은 뭘 먹으면 자네와 함께 잘 먹었다고 내가 소문 내고 다닐 수 있을지 자알 생각해두게나~ "

 

 

 

 

 

질 생각이라곤 전혀 없는 뻔뻔한 얼굴로 느긋하게 웃으며 신나 있는 노망난 늙은이 하나와,  그런 늙은이에 아무런 생각 없이 맞춰 주는 하얀 만년초와 닮은 어여쁜 사내 위로 노을의 끝자락의 색상이 변해져 가며 시간이 깊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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