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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홍

인신클로스

 

 

 

다짜고짜 왔다는 일구 말 한마디 없이 제 얼굴로 하나의 화살이 날아와 그가 왔음을 짐작하였다. 

 

" 오셨는가 "

 

평화구역 외곽에서도 한참을 가야 나오는 제법 깊은 숲, 그곳에는 절벽 아래 탁 트인 공간이 존재했다. 아는 사람만이 알만한 곳이기에 몇몇 사람들이 수양을 하러 오는 곳이기도 하였지만 깊은 밤에는 사람이 존재할리가 없었다. 

어두운 밤이라고는 하나 탁 트인 공간의 그다지 높지 않은 하늘에 띄워진 수많은 붉은 등으로 인해 주변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어떠한 장치도 없이 촛불을 안에 품고 있는 붉은 한지로 만들어진 등들은 마치 사람의 혼처럼 고요하게 밤하늘에 떠 있었다.

특이한 점은 하나 더 있었는데 하늘에는 붉은 등뿐만이 아니라 끄트머리에 방울이 달린 수십 개의 가면들이 함께 떠 다녔다. 웃는 표정, 우는 표정, 무서운 표정, 어찌 보면 기괴한 표정까지 정말로 다양한 사람의 얼굴을 본뜬 각양각색의 모형의 가면들까지 붉은 등들과 어울려 공중에 떠 있었기에 누군가 본다면 귀신들의 소행이라고 믿을만했다. 

 

" 간만이지 않은가, 이 등을 보는 것도 "

 

쓰고 있는 가면과 닮은 새카만 빳빳한 천 위, 빨간 점 하나가 찍힌 부채를 살짝 흔들자 수십 개의 붉은 등과 가면들이 작게 흔들 거리며 고요한 밤 숲 속에 서늘한 방울소리들을 울려 퍼지게 했다. 나라의 고위 관직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 혹은 나라의 경조사에 빠지지 않고 축제를 벌여왔던 자신의 가문이었기에 황제 폐하의 충실한 신하인 어진이 이 붉은 등의 축제를 처음 봤을 리가 없었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것은 흥을 돋우기 위한 자수가 놓인 형형색색의 비단 천들과 무대를 위한 다른 기타 자재들이 없이 방울이 달린 수십 개의 가면들 만이 하늘에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 다르겠지만. 

자신의 물음에 역시나 대답 대신 여러 개의 화살이 날아오자, 부채를 들지 않은 다른 손으로 가볍게 튕겨내는 손짓을 함으로써 화살을 자신의 앞에 멈추게 하였다. 여기서는 다른 사람들도 없거니와 즈한도 없었기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 물론 내 이 등을 꺼내 쓰는 것은 5년 만이긴 하지만 말이세 "

 

숲에서 어진이 도저히 나올 생각이 없어 보이자 그의 능력을 상쇄시켜 거두었던 화살이 날아왔던 방향으로 다시 날아가게 튕겨냈다. 딱히 그를 맞출 생각은 없었기에 당연히 빗발이 난 듯, 화살들이 나무에 꽂히는 둔탁한 소리가 나자 그것에 맞추어 부채를 흔들어 방울들을 소리 나게 했다. 

 

" 어쩌겠는가, 계속 거기 있을 생각 이신가 나는 그래도 별로 상관은 없네만 "

 

새카만 가면과 새카만 부채를 얼굴에 겹쳐 붉은 점이 일치하게 만든 뒤 어진이 있을 법한 곳을 바라보면서 부채를 쥐지 않은 손으로 나오라는 듯 손짓을 했다. 그러자 두 갈래의 일직선으로 된 빠른 바람이 뻗어 나가 중앙 부위를 제외한 옆 부분의 나무들을 바스라 지게 했다. 제법 큰 바람들 이였기에 그 파장으로 인해 주변의 등과 가면들이 흔들릴 법도 했건만, 아무런 흔들림 없이 방울소리도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 자네도 알겠지만, 바람은 부수는데 일가견이 있는 재주 아니던가. 자네가 나오지 않으면 하나하나 다 부셔가면 된다 생각 하네만은 "

 

풀을 밟는 소리가 들리자 가면을 벗고 앞을 바라보니 예의 그 고집스러운 무뚝뚝한 표정으로 고집된 성격을 대변해주는 듯 이 늦은 밤에도 제 자존심 마냥 높이 올려진 머리를 한채 군복을 차려입고 나온 어진의 얼굴이 보여 재밌다는 듯이 웃고는 부채를 살랑 거리며 움직였다. 그에 맞춰 방울들이 마치 웃음소리를 내듯 함께 소리 내어 울었다.

 

" 아주 그냥 표정만으로도 날 잡아먹겠네 그려. 자네 얼굴에 이 자식이 무슨 개수작인 건가 하고 적혀 있다네 "

 

그런 어진의 표정을 재밌어하는 자신이기에 만족스러움이 컸지만 자신이 몇 번이나 먼저 말을 건네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고 노려보고 있는 그의 모습이 역시나 본인을 얼마나 상종하기 싫은지가 보여 그것도 나름 재밌었다. 

 

" 자네는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

 

어진을 이 곳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오늘 하루 종일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던가. 고생은 좀 하였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소소한 성과에 기분이 좋아져 다시 한번 부채를 흔들어 짤랑 거리는 방울소리들을 숲 속에 울려 퍼지게 하였다. 기분이 좋은 자신과는 상반되는 표정으로 잡아먹을 듯 쳐다보고 있는 어진의 표정으로 누가 봐도 서로 상반되는 분위기가 충돌할 거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으리라. 

 

" 알 필요가 없지. 네가 여기서 죽으면 되니까 "

" 아이쿠 저런 "

 

아주 그냥 진심이 만발 헌 듯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살들에 자신의 능력을 가득 담아 매섭게 쏘아대는 그의 모습에 부채를 쥐지 않은 손을 한 번 더 휘둘러 그의 화살들이 공중에서 멈추게 하면서 화살들을 거두었다. 잘 뜨지 않는, 이제는 하나로 남은 눈을 뜨고선 어진을 한 번 마주 본 뒤 그가 쐈던 화살들을 어진에게로 다시 돌려주었다. 물론 맞출 생각은 없었기에 적당히 피할 수 있도록 쏘았다. 단 하나의 화살만 빼고.

제가 쏘아댄 화살이 돌아감에도 불구하고 전혀 당황스러운 기색 없이 잘 피하던 어진이었지만, 좋은 시력일수록 이렇게 산만한 것들이 많으면 그 시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붉은 등과 기괴할 정도로 많은 가면들, 심지어 방울소리가 마치 귀신이 들린 마냥 심하게 짤랑거리고 있었기에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조차도 분산되었다.

미쳐 피하지 못한 하나의 화살이 그의 오른쪽 발등을 깊게 관통하여 바닥에 박혔다.

 

" 내, 자네에게 빚이 있지 않은가. 물론 나의 과실이긴 하지만 말일세 "

 

그리고선 빈 손으로 궤적을 그려 날아간 화살 중 하나를 되돌아오게 만든 뒤 화살에 고정된 오른쪽 발등 위에 하나의 화살을 더 뚫어 박았다. 그에겐 미안하긴 하지만 이 정도는 해놔야 어진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봉쇄할 수 있으리라. 

 

" 하나는, 내 꽃의 몫일세 "

 

그렇게 말하고서는 마치 얄미운 여우를 흉내 내듯 부채를 살랑이면서 웃었다. 그에 맞춰서 간사한 방울소리도 경망스럽게 울려 퍼졌다. 물론 이 정도로 어진이 공격을 멈출리는 없었다. 저 사내라면 발등이 날아가던 말던 제 발을 망가트려서라도 움직여 자신을 공격할 것이다. 다음 수를 빠르게 꺼내놔야 했기에 그가 행동을 취하기 전에 입에 술수를 얹었다.

 

" 자네는 황제 폐하의 뜻을 거역할 생각인 겐가 "

 

뜬금없이 자신의 입에 황제 폐하가 오르자 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고 쳐다보는 그의 표정이 보여 장난기가 계속해서 올라오는 것을 참으로 참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화살을 맞는 게 나을 지경이었다. 어쨌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기에 갑자기 움직이려다 마는 모습은 참으로 재밌었다. 제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고 황제 폐하의 안위는 끔직이도 생각하는 충심이 깊은 신하가 아니던가.

 

" 우리 가문이 무언진 자네도 알지 않은가. 황제 폐하도 사람 이실세 "

 

술잔을 기울여 마시는 듯한 행동을 취하면서 어진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황제 폐화와 같이 술을 마셨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리는 행동이었다. 자신과 같이 술자리를 황제께서 함께 해주셨다는 것은 폐하께서 자신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해주셨다는 것을 그에게 알리는 것과도 같았다. 또한 어진이 자신의 가문을 당연히 모를 리가 없었다. 그 명망이 드높은 현 씨 가문의 가주가 아니던가. 어진에겐 자신의 인성만으로도 싫을터인데 온갖 더러운 정보가 오가는 권모술수로 유명한 자신의 가문의 이미지가 어우러저 그에게 제대로 찍혀 버린 지난날이었기에 모를 리가 없었다. 

 

" 황제 폐하께서 자네를 여기에 얼씨구 좋구나 하고 보내셨다고 생각지는 않는겐가 "

 

마치 추임새를 넣듯, 공연을 하듯이 자신의 말이 끝날 때마다 방울소리들을 경망스럽게 울려 퍼지게 하였다. 

 

" 아무리 자네 가문의 덕망이 높고 유서가 깊으며, 운명이 자네를 이끌어 전장에서 지금의 황제 폐하의 슬하로 들어가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일개 신하를 그 손으로 손수 지휘하시어 그의 삶을 바꾸어 놓다니, 굉장한 은혜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 황제 폐하의 뜻을 거스를 생각은 하시면 안 되지 않겠는가 "

 

한층 더 경망스러운 방울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면서 부채를 살랑이며 흔들었다. 이 말을 할 때까지도 어진이 움직이지 않는 거 보면 괜찮겠다 싶어 머릿속에 계산된 술수를 매끄럽게 이어갔다.

 

" 내,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자네가 다 듣는다면 이주 동안은 일을 거르지 않고 꼬박하겠네. 어떠한가? 황제 폐하께서 자네를 내 감시역으로 보내었으니 그 본분을 다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

 

부채를 들지 않은 손으로 가볍게 자신이 썼던 가면을 하늘 위로 튕겨 제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돌게 만들었다. 그에 맞춰서 가만히 제 자리에 떠 있던 붉은 등들도 빙글빙글 돌자 제 끄트머리에 달려져 있는 오색깔의 고운 실들이 춤을 추었다. 어지간히 상종하기가 정말 싫은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어진이었지만 활을 들고 있는 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면 잠시 마나 공격을 접겠다는 것이겠지. 

 

" 바로 그걸세, 공연은 조용히 관람해야 하는 걸세 "

 

얄밉게도 소리 내어 웃으며 그를 칭찬했다. 부채를 쥔 손을 한 번 가볍게 휘둘러 뱅글뱅글 돌던 등의 움직임도 멈추고 가면들의 방울소리도 멈추게 하였다. 소리가 없어진 고요한 숲 속에 잠깐의 적막이 흐른 뒤 수많은 가면 중 새 하얗디 새하얀 가면을 앞으로 꺼내었다. 어진과 자신의 사이에 공중에 고요히 떠 있는 그 하얀 가면은 수많은 가면 중에서 유일하게 표정이 없는 가면이었다.

 

" 아주 옛날 한 사내가 태어났을세 "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뒤에서 세 개의 가면이 더 날아와 그 허연 가면 위에 자리를 잡았다. 첫 번째 있는 가면은 고통스런 표정이요, 두 번째 가면은 화가 난 표정, 세 번째 가면은 우는 표정이었다. 두 번째 가면은 정확히 그 하얀색 가면 위 정중앙에 놓여졌다.

 

" 그 사내에겐 세 명의 어미가 있었네. 한 명의 어미는 제 형을 낳다 저승길에 오르엇고 "

 

첫 번째 가면이 요란스럽게 흔들리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 한 명의 어미는 삶을 버티지 못해 스스로 저승길에 오르엇네 "

 

세 번째 가면 또한 요란스럽게 흔들리더니 첫 번째 가면을 뒤따라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 사내의 친 어미는 사내를 낳고선, 화가 나 그를 버리고 저 험한 곳으로 가 버리었네 "

 

두 번째 가면은 앞서 간 두 가면과는 다르게 천천히, 아주 느릿하게 이동하여 어둠 뒤로 사라졌다. 곧이어 빨간색의 두 가면이 어둠 속을 뚫고 나와 하얀색의 가면 옆에 좌우로 나열되었다. 하나의 붉은 가면은 대체 이것이 무슨 표정인지 알 수 없는 느낌의 가면이었고, 하나의 붉은 가면은 눈가는 쳐져 겁이 많고 억울해 보이지만 웃고 있는 느낌의 가면이었다. 세 개의 가면은 서로를 마주 보듯 삼각형의 모양으로 공중에 위치하였다. 세 개의 가면이 제 자리를 잡자, 뒤에서 하나같이 엄격하고 엄한 표정을 한 가면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와 세 개의 가면을 원형으로 둘러쌓기 시작했다.

 

" 그 사내에게는 두 명의 더 어미가 있었듯, 두 명의 형제가 있었네. 하지만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형제들의 사이는 그리 썩 좋은 편이 아녔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어른들의 손에 놀아나고 있는 그 형제들은 나이가 어려 그것이 슬픈 것인지도 모르고 자랐다네 "

 

마치 그것을 슬프다는 듯 세 개의 형제 가면들은 느릿하게 움직이면서 방울 소리를 뚝, 뚝 떨어지는 눈물 소리 마냥 길게 한 번씩 끊어 내었고 이어 주변을 둘러싼 엄한 표정의 가면들은 그것이 즐겁다는 듯 경망스럽게 좌우로 움직이며 방울소리를 요란하게 내었다.

비어져 있는 자신 손의 검지 손가락으로 위로 올리는 행동을 취하자, 세 개의 형제 가면 중 하얀 가면만이 하늘 높이 올라가 돋보이는 위치로 이동하게 되었다. 하늘 높이 올라간 그 하얀 가면은 갑자기 위아래로 작게 흔들리면서 마치 경련하듯이 덜덜 떠는 듯한 행동을 하였다. 하얀 가면의 움직임이 격해지자 그에 딸려져 있는 방울소리도 구슬프게 울어대며 덜덜 떨었다. 

 

" 그 사내는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모진 삶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마음의 병을 앓기 시작하게 되네. 화가 난 듯 무표정하다가도 갑자기 실성한 듯 웃기 시작한다던가, 제 집의 누각을 불태워 버린다던가 하면서 말일세. 주변에는 그 사내가 미쳤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사내의 집안 또한 사내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네 "

 

혼자 허공에서 떨고 있는 하얀색의 가면 주위로 그 엄격한 표정의 가면들이 빠르게 올라갔다. 하얀색 가면을 중앙에 두고 무서운 표정을 한 그 가면들은 빠른 속도로 주변을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방울소리들 또한 매섭게 울려 댄다. 마치 그 하얀색의 가면을 꾸짖듯이, 나무라듯이, 비난하듯이. 

 

" 너무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아닌가. 결국 그 사내는 그 어린 날 집을 나갔던 제 어미처럼 집을 나가게 되네. 더 슬픈 것은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는 사실일세 "

 

자신의 손에 있는 부채를 한 번에 짝! 하고 소리를 내고 접었다. 그러자 하얀색의 가면 옆과 아래에 있던 엄격한 표정의 가면들과 붉은 가면 한 개가 힘없이 바닥으로 후드득 하고 떨어졌다. 남아 있던 붉은 가면 한 개는 저 멀찍이 허공으로 잠시 퇴장하였다.

이윽고 잠시의 침묵이 찾아오고, 검은 허공에서 방울소리를 울리며 금색으로 휘양 찬란하게 장식된 까만색의 가면이 내려왔다. 이 가면 또한 많은 가면 중 유일하게 화려하게 금색으로 장식된 특별한 가면이었다. 금색의 가면이 등장하자, 하얀색 가면은 그 가면을 마주 보다 제 위치를 낮추어 금색의 가면 밑에가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허공에 위에는 금색의 가면, 아래엔 하얀색의 가면이 자리를 잡게 된다.

 

" 불쌍하고 가엾은 사내를 도우기 위함이었던 하늘의 뜻인 것일까. 사내는 세상 아래 가장 고귀한 분을 만나 새 삶을 살게 되네. 아주 다행인 일이 아니던가! "

 

마치 흥이 난단 듯이 다시 한번에 부채를 짝하고 소리 내어 단숨에 펼치었다. 두 가면의 만남을 축하하듯 허공에 떠 있는 수많은 붉은 등 들이 제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마치 여인내의 치맛자락의 춤 시위 마냥 오색깔의 실타래를 춤추게 하였다. 

 

" 그렇게 그 사내는, 고귀한 분을 뫼시게 되네. 고귀한 분은 곧 천하를 가지 시었고 사내 또한 옆에 있었네. 사군지도여부일체(事君之道與父一體)일지라. 그분께서 가시는 길 하나하나 비단길과도 같이 뫼시고 싶었던 그 사내는 생각을 하네. 자신이 그분을 대신하여 험한 것들을 대신하면 되리라. "

 

어느덧 춤추던 붉은 등들은 제 움직임을 멈추고, 하얀 가면만이 느리게 흔들렸다. 하얀 가면의 움직임에 맞춰서 고요한 적막 속 짤랑, 짤랑하는 방울 소리가 느릿하게 울려 퍼졌다. 그러자 저 멀리에 있던 붉은 가면이 다시 무대로 날아와 등장했다. 그 붉은 가면은 두 개의 붉은 가면 중, 눈가는 쳐져 겁이 많고 억울해 보이지만 웃고 있는 느낌의 가면이었다.

 

" 그러던 도중, 사내는 알게 되네. 자신의 아우가, 권력에 그만 눈이 멀어 자신의 형을 죽였다는 사실을 말일세. "

 

어느새 금색의 가면은 멀찍이 멀어지고, 하얀 가면과 붉은색의 가면이 서로를 마주 보고 허공에 조용히 떠 있게 되었다. 하얀 가면은 마치 침묵하듯 조용히 허공을 지키고, 그를 마주 보고 있던 붉은색의 가면이 천천히 위아래로 흔들리더니 이내 경련이 일어난 듯이 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방울소리가 마치 겁에 질린 사람의 몸에 붙어 있는 것 마냥 정신없이 짤짤 거리면서 흔들리기 시작하여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었다.

 

" 사내가 물었네. 네가 형을 몰아내어 죽였느냐, 나 또한 그리 만들 것이냐 "

 

붉은색 가면은 더더욱 심하게 흔들리어 거의 방울이 부서질 듯이 가면에 부딪히면서 소리를 내었다. 금색의 가면은 어느새 하얀색 가면의 위로와 마치 하얀색 가면과 붉은색 가면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을 쳐다보듯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사내의 가문은 아주 덕망이 높고 유서가 깊은 곳이었기에, 아무리 같은 가문의 씨들이라고는 하나 주인인 형님을 몰아내고 죽임으로 이끌었다는 것은 아주 큰 일이었네. "

 

말이 마치기가 무섭게 격하게 흔들리고 있던 붉은 가면은 바로 그 움직임을 멈추고 바닥으로 툭하고 떨어졌다. 

 

" 그렇게 사내는 아우도 잃게 되었네. 아우가 스스로 저승길에 오르게 되어서 말일세 "

 

하얀 가면의 살짝 틀어 아래를 쳐다보게 만든다. 아래에는 이미 앞서 있던 수많은 가면들과 좀 전에 떨어진 붉은색 아우 가면과 형의 가면이 존재했다. 

 

" 행방을 알 수 없는 친 어미를 제외하곤, 그 사내는 그렇게 혼자가 되었네. "

 

자신의 뒤에 남아 허공에 떠있던 수많은 가면들을 어진과 자신의 사이 무대로 하나둘씩 옮겼다. 모양새들은 다 각기 다르긴 하였지만 표정은 다들 하나같이 간신배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하얀색 가면의 앞에 간사한 표정의 가면들이 제 자리로 와 위치하게 한 뒤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 사내는 결심을 하네, 지난날들로 인해 고되어진 삶이었기에 그리 정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가문과 형제들을 위하여 "

 

하얀색 가면이 고요히 떠 있다, 빠르게 제 자리를 한 바퀴 빙 돌았다. 그에 따라서 방울 소리가 적막을 뚫고 짧게 한번 울리자 수가 많은 간신배 표정의 가면들이 제 자리에서 아까의 붉은 가면과 같이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기 시작하였다. 너무 많은 가면이 요란하게 방울들이 울려 퍼지는 바람에 하얀색 가면의 방울소리가 묻혀 들리지 않았지만 다시 한번 하얀색 가면이 빠르게 제 자리를 한 바퀴 빙 돌자 건너편 가면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이내 마치 수명이 다한 낙엽들이 나무에서 떨어지듯 간사한 표정의 가면들이 바닥으로 하나둘씩 툭, 툭 하고 떨어졌다. 

 

" 사내는, 그렇게 자신의 아우를 꼬드겨 죄를 짓게 만든 슬하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죽이고, 또 죽여 죄를 묻고 그리고 그들에게 아우의 죄까지 뒤집어 씌어 가문과 형님, 아우의 체면을 보호하였네 "

 

하얀색 가면의 아래에는, 바닥으로 추락하여 떨어진 수많은 가면이 즐비하게 늘어지게 되었다. 공중에 떠 있던 모든 가면 중 하얀색 가면과 금색의 가면, 그리고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어미 가면만을 제외하고 모든 가면이 하얀색 가면 아래로 떨어져 있으니 그 수가 상당히 많아 마치 돌무덤과 같은 느낌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게 되었다.

 

" 그 사내는 그렇게 세간에서 미친 가주라 불리게 되었네 "

 

이야기의 끝남을 알리기 위하여 다시 한번 빠르게 부채를 접어 짝! 소리 나게 하고는 붉은색 등을 요란하게 제 자리에서 돌려댔다. 형형색색의 비단실들이 흔들리며 다시 여인내의 치맛자락과도 같은 춤 시위를 벌이고 뭐가 그리 흥겨운지 춤추듯이 붉은색의 등들이 하늘을 날아다녔다. 이미 가면들의 방울소리는 없어 그 흥이 떨어질 수도 있건만 마치 축제가 일어난 듯이 붉은 등 들의 흥겨운 움직임의 궤적을 그려댔다.

 

가면극을 벌이는 내내, 일부러 어진의 표정은 쳐다보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이 어진을 놀리는 것을 좋아한다고는 하나 그의 과거를 들추는 일이었다. 자신또한 남에게 과거를 들춰짐 당하는 것을 썩 유쾌해 하진 않는지라 그것 만큼은 놀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어진의 표정을 알 수가 없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어느 표정을 짓든 간에 그로 인해서 감정이 유발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 하지만 이야기는 이게 끝이 아닐세 "

 

부채를 들지 않은 손을 품 안으로 넣어 새로운 가면 하나를 꺼냈다. 선하게 웃고 있는 가면이었다. 심지어 그 가면의 옆에는 연부농으로 만들어진 고운 종이꽃이 좌우로 장식처럼 달려 있어 누가 봐도 여인을 뜻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으리라. 품 안에서 꺼낸 가면을 하늘에 두둥실 띄운 뒤 하얀색 가면 앞으로 보내 두 가면을 마주 보게 만들었다. 

 

"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지 "

 

접힌 부채를 쥔 손을 한 번 빙글 돌리고선, 어둠 속에서 붉은 등 하나를 꺼내왔다. 다른 등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두 가지가 달랐다. 안에 초가 들어있지 않은지 불이 켜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다른 등들과 다르게 밑에 달린 실이 등과 비슷한 붉은색의 실들로 이루어진 장식이 매달려 있단 점이었다. 여전히 어진을 바라보지 않은 채로 말을 이어갔다. 

 

" 이야기는 재밌게 들었는가, 이제 막을 내려야 할 시간일세 "

 

불이 유일하게 켜지지 않은 붉은색의 등을 어진의 머리 위로 천천히 날려 보냈다. 솔직히 이 순간만을 오늘 학수고대하며 기다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무리 자기가 즐거움을 위해 움직이는 인간이라고는 하나 이 가면극과 등 놀이는 꽤나 번거로운 일이었기에 수지가 맞지 않는 장사였다. 

 

" 내 이야기 값은 "

 

중간에 말을 끊고선, 짝 하고 손뼉을 마주쳤다. 그러자 저 멀리 어진의 머리 위에 있던 붉은 등이 양쪽 바람에 못 이겨 펑하고 터지고선 하얀색의 가루를 어진 위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바람들 덕분에 그 하얀색의 가루는 곱게곱게 퍼져 어진이 그 가루를 흡입할 수 있도록 도왔다.

 

" 이걸로 받겠네. 내 공연은 자네도 아시다시피 아주 비싼 편이니 말일세 "

 

연극 중 많은 등과 많은 가면을 이용하였다 보니 이 붉은 등 또한 연극의 일부일 거라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황제폐하가 주신 자신의 감시역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 정말로 제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분을 삭이며 기다리다 당한 것인지 어느 쪽인지는 표정을 보지 않아 알 순 없으나 이젠 돌아봐도 될 거 같았다. 지금 뿌려진 하얀색 가루는 특별히 조제한 수면 가루로 화국 내에서 유명하다는 수면 가루들은 죄다 들이부어 조제했다. 한 삼일은 기절해 있을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어진은 독하디 독한 놈이니 약기운을 이겨내고 하루면 일어날지도 모르겠는 일이지만.

 

" 잘 자게나 어진~ "

 

아무리 천하의 어진일지라도 약 앞에선 장사 없는 법이었다. 그제야 어진을 보니 휘청이는 모습이 보여 웃으면서 그의 기억이 끊기기 전에 서둘러 말을 이었다. 

 

" 자네가 날 오해하고 있는게 있는데 난 말일세... 자네가 생각하는 거만큼 나쁜 사람이 아닐세 "

 

펼쳐진 부채를 자신의 얼굴 앞에 얄밉게 흔들면서 신이 나서 한 쪽손을 어린아이처럼 잘 가라는 듯이 흔들었다.

 

" 아주 나쁜 사람이지. 눈 떴을 때 내 장난이 어떤 건지 기대하면서 푹 자고 일어나게나. 이야기 듣느냐 수고하셨네 "

 

이윽고 어진이 바닥으로 쓰러지듯 넘어질 듯 하자 그가 땅과 부딪혀 다치지 않도록 바람을 이용하여 일으켜 세웠다. 지금 그 상태로 넘어지면 발등에 꽂혀 있는 두 화살 때문에 상처가 더 깊어질 수도 있어 넘어지게 하면 안 되었다. 뭐 좀 미안하긴 하지만 이리라도 하지 않으면 이야길 듣지 않을게 아닌가. 심지어 이 독한 녀석에게 장난 한 번 치겠답시고 오늘 하루 들 인공이 엄청났기에 쌤쌤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진에게 다가가 그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는 그의 발등에 꽂혀 있는 화살을 빼내고선 자신의 등에 들쳐맸다. 무거웠다. 아마 심리적인 탓이겠지만은 즈한이 훨씬 가벼운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극에 쓰인 등과 가면들은 숲 속에 잘 모아두고선 나중에 와서 뒤처리할 생각으로 일단은 발걸음을 옮기었다.

 

 


 

 

모두가 잠이 들기 시작하는 깊은 밤. 빠르게 지붕 사이를 넘나들며 발걸음을 옮기었다. 점점 갈수록 어깨에 있는 어진이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 무겁다. 자신도 빨리 어진을 배달해놓고 즈한에게로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에 다소 어진을 난폭하게 들쳐 매고 뛰어다니고 있긴 하지만 괜찮을 것이다. 평소의 훈련으로 단련된 어진이니까.

어느새 자신이 가고자 했던 곳에 도착하고서야 옆 건물의 지붕에서 살며시 내려와 허공에 몸을 띄웠다. 3층으로 된 없어 보이는 기숙사 건물. 저 건물에 그녀가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시장통에서 정보를 얻었기에 알고 있었다. 2층 부근쯤을 날아다니며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건물의 귀퉁이 끄트머리에 불이 켜져 있는 방이 보여 그곳으로 날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창문 너머로 보이는 레이스 달린 불투명의 커튼이며 아직까지도 불이 켜져 있는 걸로 봐서는 그녀의 방인 것이 분명하여 가볍게 창문을 두 어번 두들겼다.

모자란가? 싶어서 다시 두 번을 두들겼다. 그랬더니 창문 너머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고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은 바로 자신이 잘 아는 그 얼굴이었다. 자신을 보자마자 경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허둥대는 것이 지금이 밤이 아니었다면 이미 소리를 지르고도 남았을 것이리라. 

 

" 시, 시, 시, 신홍 씨 뭐 뭐하시는 거예요! "

" 안녕하신가 좋은 밤일세! "

 

허둥대면서 창문을 열어젖히고는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기겁하는 로라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 모습을 보기 위해서 오늘 하루 힘을 내었던 것이지! 암, 그렇고 말고! 로라의 얼굴에 내 집은 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듯한 표정이 보여 한바탕 웃으면서 놀리고 싶지만 주변 사람들을 깨우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녀가 작게 목소리를 내었기에 자신도 작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 내 선물을 가져왔을세 "

 

그렇게 말하고서는 자신의 한쪽 어깨에 들쳐 업혀 있는 어진을 한쪽 손으로 가리키면서 장난을 쳤다. 순간 로라의 표정이 굳더니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그 예의 귀여운 두 눈이 휘둥그레 지더니 이윽고 그녀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것이 보여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지금이 백주대낮이었다면 지금쯤 이 건물이 떨어져 나가게 으아아아아라는 비명을 지르면서 그녀가 울부짖었을 것이다. 

 

" 어, 어진 씨?!?!?!?! 이게 무, 무슨 일인 건데요!!!!! "

 

그 귀여운 양손으로 창문을 꽉 쥔 채 상체를 밖으로 내밀고선 경악하고 있는 모습에 더욱 놀리고 싶었으나 일단은 이렇게 기온이 쌀쌀해져 가는 계절에 아녀자를 찬 바람을 쐬게 하는 것도 좋지 않거니와 자신이 구멍 내놓은 어진의 발도 치료를 해야 했기에 어진을 들쳐 매지 않은 한 쪽손으로 로라의 어깨를 살짝 안으로 밀었다. 

 

" 내 잠시, 안으로 들어가겠네 "

 

그렇게 말하고서는 로라의 동의가 떨어지기도 전에 훌쩍 열린 창문을 넘어 방 안에 들어갔다. 창문 바로 아래에는 로라의 침대와 화분이 있었기에 그것들을 밟지 않게 조심하면서 공중에 떠, 날다 싶이한 채로 들어간 것이다. 들어서자 평소 자주 맡았던 로라의 향기가 진하게 물씬 풍겨오는 여성스러운 방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간소하지만 정말로 여성스럽게 이쁘게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방. 가구들은 가격이 저렴해 보였지만 이불이나 천들은 로라의 취향을 잔뜩 반영해놓은 듯해 보였다. 워낙 평소에도 성실한 그녀였는지라 이 깊은 밤에도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작은 책상 위 펼쳐진 책들과 깃펜이 그녀가 자신이 오기 전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알려 주었다. 그대로 로라의 방 한가운데 둥둥 떠있는 채로 그녀의 방을 구경했다. 그녀는 자신이 들어오자 황급히 창문을 닫고서는 자신 옆에 재빠르게 와서 작은 목소리로 땍땍 거리기 시작하였다.

 

" 대, 대체, 대체 대체 왜 오신 거예요! 아, 아니 어진 씨는 어떻게 된 거고요!!! "

" 아이고 우리 로라, 아직도 잠도 안 자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던 겐가 "

" 말 돌리지 마세요 신홍씨!!!!!!!!!!!!!!!!!!!!!!!!!!!!!!!!!! ! ! ! !!!!!!!!!!!!!! "

 

묵음과 가까운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영혼이 담긴 절규하는 모습이 너무나 재미있어 흥이 절로 나왔기에 어서 빨리 어진을 내려놓고 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좀 더 농을 치기로 마음먹었다.

 

" 아주 커다란 들짐승에게 어진이 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구해왔다네. 이거 보시게나 이 발을 아주 무시무시한 짐승이 물어 이리 가엾게도 다친 걸세 "

" 헉, 정말요? "

 

어진이 다쳤다는 말에 한껏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로 바뀌는 그 모습과 자신에게도 이런 면이 있는가 하면서 감동하는 듯해 보이는 로라의 모습에 내면의 웃음이 폭발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만약 여우의 꼬리라도 달렸다면 지금 엄청나게 흔들리고 있었으리라. 마치 그동안 저를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과 더불어 어진이 걱정되어 한껏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기분 좋게 웃으면서 어진의 신발을 풀러 냈다.다소 벗기기 어려워 보이는 어진의 신발이었지만 자신에겐 자신이 있었다. 자신은 누군가. 그 어려운 복식도 항상 다 껴입는 즈한과 함께 5년을 살아오지 않았던가. 제 아무리 번거로운 옷과 신발이라도 이젠 자신 있게 편하게 풀러 낼 수 있을 정도로 발달되었다. 이윽고 어진의 발이 드러나자 한층 더 혼돈과 공포로 변하는 그 얼굴에 너무 신이나 견딜 수가 없을 거 같은 기분이었다.

 

" ... 세상에, 어쩌면 좋아요 "

 

다친 어진의 모습을 보면서 양 손을 입가로 모으고선 안절부절못하는 그 모습이 귀여워 기쁘게 웃고는 그녀의 귀여운 침대에 어진을 눕혔다. 다행히도 침대가 작진 않아 어진을 구겨서 놓지 않아도 될 거 같음에 안도하며 똑바로 누워 있을 수 있도록 어진의 목을 들어 로라의 베개를 밑으로 넣어주었다.

 

" 그러니까 말일세, 큰일이지 아니한가 "

" 아, 아니 그런데 그럼 의료진에게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닐까요... 이렇게나 깊게 다치셨는데.... "

 

어느새 두 개의 화살이 박혀 있던 발등은 상처 부위에 시퍼런 멍들이 번져 커져 있었고 뚫린 발등에선 쉼 없이 피가 흘러져 나와 좀 있으면 로라의 이불에도 묻을 기세였기에 자신의 소매에서 하얀 무명천을 꺼내어 둘둘 만 뒤에 어진의 발 밑으로 넣어 로라의 이불에 피가 묻는 것을 방지하였다.

 

" 의료진에게 데려가는 건 안타깝게도 무리일세 "

" 어, 어째서요 "

 

어지간히도 어진이 걱정되었는지 잔뜩 걱정이 물이 오른 얼굴을 하고서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는 로라를 보면서 웃음이 터지지 않도록 안면 근육에 최대한 힘을 주고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내 이리 웃음을 참는 게 고통스러울 줄이야. 차라리 다시 화살을 맞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굉장히 낙담한 표정으로 로라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무 말 없이 로라를 바라보자 그녀의 눈이 점점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사시나무 떨면서 자신을 바라보기에 말 안 해도 저 머릿속에 지금 뭐가 들어 있을지 훤히 보여 정말로 재밌었다. 

 

" 이 발 구멍은 내가 뚫었으니 말일세. 어의들이 보면 들짐승 이빨 자국이 아니라 화살 자국이라는 걸 알게 되지 않는가 "

 

어진을 로라의 침대에 내려놓고선 자유로워진 양손으로 가볍게 박수를 짝! 하고 쳤다. 자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잠시 뻥진 얼굴을 했다가 다시 한번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면서 난리를 부리는 로라의 모습에 큰 소리로 웃음이 나지 않도록 최대한 절제하며 웃었다.

 

" 시, 신홍 씨 진짜 왜 그래역!!!!!!!!!!!!!!!!!!!!!!!!!! 신홍씨 나빠여!!!!!!!!!!!!!!!!!!! "

 

좀 전에 자신을 믿으려고 했던 탓일까 그래서 배신감에 충격이 배가 되어서 그런 것일까 평소보다 더더욱 격렬하게 기세 좋게 울부짖는 저 얼굴과 행동이 너무나 재밌을 수밖에 없었다. 밤이기에 소리를 못 질러 그녀가 요란하게 절망하는 모습이 한층 더 귀여웠다. 간만에 벌였던 가면극과 등 놀이로 인해 몰려오는 피로가 싹 씻기는 기분이 들었다. 

 

" 나쁘기는, 자네가 어진과 친해지고 싶어 하니 내 손수 이리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닌가. 그리고 말은 바로 함세, 발등에 난 상처와 뒤통수가 뚫려 눈이 날아간 상처. 어느 것이 더 중헌가 나름의 정당한 복수를 한 걸세 "

 

자신의 손으로 이제는 날아가 없는 한쪽 눈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녀가 주춤하며 자신을 나무라는 반응이 작아지는 것이 보여 새삼 마음이 여리고 착한 여인이라는 게 느껴져 왔다.

 

" 그, 그 그래도... 이러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요 "

 

마치 당장에라도 눈물이 터질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선, 항상 울어 귀엽게 부풀어 올라져 있는 눈가가 다시 뻘게져오는 것이 이제는 슬슬 마무리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여 자신의 품 안에서 조그마한 봇따리를 꺼내 그녀의 작은 손에 쥐어 주었다.

 

" 안에는 짓이겨진 상처에 좋은 약초와 붕대가 들어 있음세. 잘 풀러 치료해주시게나 "

" 왜, 왜 제가 치료를 해야 하는 분위기가 되는 거죠... 아니 물론 어진 씨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

" 자네가 치료해주지 않는다면 내 어진을 길가에 버리고 갈 테니 당연히 자네가 치료해야 하지 않겠는가? "

" ?!?!?!? "

 

아주 그냥 울었다 경악했다 화냈다 하는 그 표정 변화가 자신의 소란스러운 연극만큼이나 소란스러워 이 재미를 버리기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시간이 깊어져 가기에 자신이 나쁘다면서 경악하는 그녀를 뒤로 하고선 본래의 용건을 꺼내 들었다. 

 

" 어차피 어진이니 하루정도면 잠에서 깰 걸세, 물론 발등이 다쳤다 보니 한동안은 거동이 좀 힘들 수도 있겠으니 잘해보시게나. 내, 어진을 잘 치료해주면 자네에게 이번 선물 말고 아주 값진 다른 선물을 하나 해줌세 "

 

그렇게 혼돈과 공포에 빠진듯한 로라를 등 지고선 창문을 열었다. 어찌해야 할바를 몰라 굳어 있는 그녀를 좀 더 놀리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고, 즈한이 또 어디서 잠들었을지 모르는 상황인지라 가서 제대로 눕혀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이젠 그만 그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진 후 바람을 이용하여 자신의 몸을 공중에 띄운 뒤에 창문을 넘어서 그녀를 바라보며 대화의 마무리를 지었다.

 

"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좋~은 시간 되시게나 "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이 로라의 창문을 탁, 하고 닫아주고선 그대로 하늘로 날아 올라 그녀의 집에서 멀어졌다. 물론 저 방에서 어진이 눈 떴을 때의 표정이 몹시 나도 궁금하였지만 그리되면 오늘 하루 그렇게 공을 들인 것이 허사가 될지어니 그 정도까지 욕심에 눈이 멀진 않았다. 숲에 다시 들러 연극에 사용하였던 등과 가면들을 회수해가야 하나 잠시 고민을 하다가 피곤하고 귀찮기도 하였거니와 즈한의 걱정이 한 번 들기 시작하니 계속 생각나요 잃어버리면 다시 사면되는 것이요, 내일 사람을 대신 보내어 회수 해와가도 되는 것이니 곧장 그렇게 발걸음을 그의 집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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